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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과 신뢰의 사랑 : 모 아니고 도 아닌 걸?

2024. 10. 11. 15:58

버디물은 주인공 두 사람이 콤비 combination 가 되어 이야기가 흘러간다아웅다웅하던 두 주인공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신뢰의 포만감을 느낀다버디물 대부분은 반대되는 성향의 주인공을 제시한다특정 상황에 관해 모와 도로 구분하여 갈등을 일으킨다동시의 서로를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는 해소의 서사가 이어지는데이런 대조와 융합이 시청자에게(적어도 내게고통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그런 강점이 잘 드러나는 드라마가 일본에도 있는데오늘은 드라마 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좌 이부키 아이(아야노 고 분), 우 시마 카즈미(호시노 겐 분)

 

<MIU 404(이하 404)>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 노기 아키코가 쓴 작품이다. 드라마 <언내추럴>로 한국에 이름을 알린 노기 작가는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 중 하나다. 그의 많은 작품을 보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의 작품에서 희망을 노래한다는 점이 유독 좋았다. 나의 현실과 닮아있는 아픈 이야기를 그리지만, 다시 곱씹고 소화하면 실낱같은 희망과 사랑을 노래했다는 걸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넓은 땅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 같은 기쁨을 얻었다.

404은 전작 <언내추럴>과도 세계관을 공유하는 흥미로운 골격을 취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CU를 좋아하기에 짜임새 있는 세계관 통합은 희열과 만족을 가져다주었다. 과도한 몰입에서 이어진 망상이 현실이 되어서 그럴까. 더욱이 이 세계관과 이어진 영화 <라스트 마일>도 곧 한국에서 개봉한다니. 이 영화 보러 일본에 가려 했는데 한국에서 얌전히 기다려 봐야지.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404은 시마 카즈미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넥타이도 대충 매고, 뺀질거리는 운전수 같은 시마가 가장 먼저 눈도장을 찍는다. 그는 과거 사건으로 수사 1과 엘리트 형사에서 좌천당하여, 새로 만들어진 기동수사대(이하 기수)에 합류한다. 그리고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는데. 그 파트너는 시마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시마가 고양이라면 파트너는 강아지. 시마는 원리 원칙을 고수하는 형사이지만, 이부키는 정반대로 자기 감을 신뢰한다. 하물며 용의자가 범인이 아닐 거라는 믿음까지 보여주는데. 이유는 자기 감이란다. 실로 답답한 양반이다. 나는 시마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이부키에게도 우리는 배울 게 참 많다는 걸 느꼈다.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구분이 뻔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다. 사실 이부키는 어릴 적 누군가를 신뢰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힘든 어린 시절, 불량배들까지 시비 걸어올 정도니. 그 누구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형사 가마고오리를 통해 처음으로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이부키는 어둠의 구덩이에서 끌어올려졌다. 그러니 누군가 구덩이에 빠져도 믿어주고 싶은 형사가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시마는 원리와 원칙을 지키지 않은 후배 파트너를 잃었다. 그 일을 수만 번 곱씹어도 후배가 원리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상대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손 내밀어야 마땅했던 자신이 그러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질타와 자책을 휘둘렀을 거다. 그런 아픔을 가지고 만난 이부키가 처음엔 낯설었지 않았을까? 이해되지 않지만, 그의 모습을 보며 신뢰할 줄 아는 용기가 제게는 필요했다는 걸 느겼을 거다. 그래서 처음엔 아웅다웅했으나, 누군가를 신뢰할 줄 아는 이부키를 인정하게 되고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이부키로 하여금 자기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다. 그리고 가마 형사 사건으로 구덩이에 빠진 이부키에게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혹자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일, 이건 여간 어려운 일이다. 상대에게 흠이라고 생각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보이면 너그러운 태도를 유지하기 힘들다. 나만 참는다는 생색도 난다. 이해하다가도 눌러온 감정이 폭발할지도 모른다. 이해보다 한 차원 더 어렵지만 중요하고 선행되는 게 '인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 사람의 기질이고 성품이고, 나는 바꿀 수 없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무시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부족한 모습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다 너 같지 않다. 너처럼 생각하는 게 오히려 독특할 수 있다. 라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 상대의 모습을 인정하고 나의 반으로 받아들이면 나는 더욱 평균케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균형을 이루고 다른 사람의 균형을 기다려줄 수 있는, 그렇게 나는 손 뻗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인정이 신뢰를 부르고, 신뢰로 그 사랑이 채워질 것이다.

 평소 대부분의 사고의 연장선으로  모 아니면 도로 결론짓는 내게는 이 작품이 뒤통수를 갈기는 것 같았다. 1과 10만 있다고 생각한 내 인생에, 2도 있고 3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9에 갔다가도 1에 갈 수 있고, 2에서 10도 될 수 있는. 우리의 삶은 모도 아니고 도도 아니고 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건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내가 다른 사람과 만나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두 물질이 잘못 만들어진 물질일까?

 그것도 아니다. 시마와 이부키가 서로 달랐듯이, 우리도 모두 이 세상에 다르게 태어난 존재다. 비난과 미움이 당연한 시대에 자기 사고의 당위성을 버릴 때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온전할 수 없는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자. 그리고 타인의 불온전함도 받아들여 신뢰를 기대하자. 그래야 사랑을 배울 수 있듯이.